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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주의보

성폭행 당한지 한달만에 쓰는 글

이글을 쓰는 이유는


저와 같은 성폭행 피해자분들께서


현재 얼마나 힘든 상황인 지를


알리고 싶어서 입니다.




2016년 6월 28일 새벽


성폭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22살.


대학교 동아리 엠티를 갔다가


선배에게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배와 저 둘 다 기숙사에 살고 있었고,


꽤나 친한 사이였습니다.




오전, 학교 근처 파출소에 가 신고를 했습니다.


자필진술서를 작성하며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숙사로 돌아갔고, 가해자는 불려갔습니다.


오후, 가해자의 미안하다는 문자와 함께


가해자의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받고 싶지 않아 핸드폰을 꺼버렸습니다.


아래가 아파 산부인과에 가서 검진을 받은 뒤


DNA 체취까지 하였습니다.




29일, 부모님께는 물론이고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었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동아리 사람들 뿐.


하지만 그조차도 소문이 날까 겁이나


식음을 전패하고 방안에만 누워 있었습니다. 




30일, 기숙사로 가해자의 부모님이 찾아왔고


지쳐있던 저는 합의를 해주었습니다.


가해자의 부모님은 울며 미안하다고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합의금은 얼마나 해줄까 라는 소리에


몸 파는 여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준비한만큼만 달라는 말을 하고


합의금을 받았습니다.


그냥 다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가해자의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


저를 보며 "예쁘게 생겼네.


그래서 우리 아들이 그런 마음을 먹었나봐요."


라고 하셨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7월 1일, 경찰에서 피해진술을 해야하니


약속을 잡자고 했습니다.


7월 4일, 그 일 이후


신고하러 외출한 것을 제외하면


첫 외출이었습니다.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거냐는 말에


필요하다면 하겠다고 했습니다.


피해진술은 생각보다 끔찍했습니다.


MT의 경우 당연히 술이 들어가니,


기억이 제대로 날 리가 만무했습니다.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상황을 설명하니,


폭행 사실에 대해


상세한 묘사를 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허벅지를 만지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하자,


허벅지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길게 만졌냐며 물었습니다.


당시 기분은 어땠고, 왜 거절하지 못했으며,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상세하게 질문했습니다.


그게 그 분들의 일인 건 알지만,


장장 2시간에 걸친 조사가 끝나자


내가 왜 신고를 했을까 하는


후회도 하게 되었습니다.


상담 치료를 받을 거냐는 말에


받겠다고 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조사 후, 차라리 덮어놓은 상태였을 땐


아무 생각 없이 잠만 잘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자세하게 다시 떠올린 뒤,


저는 완전히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어,


혼자 헤쳐나가려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어서 남자친구에게 말했습니다.


혼자 있는 게 무서워


남자친구의 자취방으로 들어가


아무것도 안하고 또 자는 것만을 반복했습니다.




자다가 일어났을 때 불이 꺼져있으면


남자친구를 깨워 한참을 울었고,


만약 남자친구가 옆에 없는 상태라면


더욱 불안해져


자해를 하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남자친구는 묵묵히 옆에 있으면서


주변에 날카로운 물건을 다 치웠습니다.




사건이 있고 일주일정도 지나자


배고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자친구는 기뻐하며 밥을 해줬고,


혼자서 밥 세공기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30분 뒤 전부 토해냈습니다.


그러자 또다시 배가 고파 밥을 먹었고,


토했고, 먹었고, 토했습니다.


결국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고


약을 처방 받았습니다.


끔찍한 나날의 연속이었고,


저도 남자친구도 모두 지쳐갔습니다.




남자친구가 지쳐가는 게 미안해


헤어지자 말하며


기숙사로 돌아가겠다 했지만


괜찮다며 잡아줬습니다.


유동식을 먹으며


그래도 구토를 하진 않게 되었습니다.


원래 49kg정도 됐던 제 몸무게는


40kg 전후를 맴돌았습니다.



7월 14일, 상담날자가 잡혔습니다.


7월 18일, 첫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사는 저를 보고 미인이시네요.


라며 분위기를 풀었습니다.


다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피해진술 내용을 보면 안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분고분하게 묻는 말에 다 대답했습니다.


합의 해줬어요? 라는 말에


해줬어요. 라고 대답하니


온갖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왜 해줬냐, 이런 일이 또 발생했을 때


또 해주면 그 땐 꽃뱀 밖에 안된다.


가해자는 좋겠네. 등등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힘들다고 말하니


미안하다 사과했습니다.


안타까워서 그랬다며


거듭 미안하다 사과했습니다.




다른 내담자의 피해진술을 보여주며


이 사람들은 이렇게 처리했다 현명하지 않냐


그렇게 두어명의 진술서를 보고 듣고 하다보니


나는 현명하지 못한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 못한 건가. 라는 생각은


덤으로 따라왔습니다.




상담이 끝날 때 쯤 되자,


상담가는 제게 "미인이에요.


그러니까 가해자가 그런 마음을 먹었겠지."


라며 웃었습니다.


더 이상 상담을 받을 필요가 없다 생각했습니다.


상담 후, 다시 상황은 악화 됐습니다.


물만 마셔도 다 토해냈고,


한층 더 심각해져 얼굴을 긁어냈습니다.


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생기지 않았으면


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친구는 모든 일을 내쳐두고


저만 보살폈습니다.


괜찮아. 네 잘 못이 아니야. 괜찮아.


한 달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습니다.


어느정도 묻으려고 생각했던 기억이


다시 기어 올라왔습니다.


불을 끄면 그 때의 촉감이 되살아나


바들바들 떨어야 했고,


남자친구 이외의 다른 남자를 마주치면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곤 했습니다.




이 상황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저는 아직도 음식을 못 먹고,


식도염 약을 달고 살아야 하며,


얼굴에는 손톱자국이 나 있습니다.


잠에 쉽게 들 수 없고,


불이 꺼진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혹 잠에 든다 하더라도


악몽에 시달려 계속 깨게 됩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동아리 선배로부터


"아직도 힘들어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느꼈습니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 사건이 얼마나 끔찍한 건지 모르겠구나.


그래서 알리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혹 주변에 저와 같은 피해자가 있다면,


"네 잘 못이 아니야."라는 그 말이라도 해주세요.


분명 그 분도 저와 같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테니까요.


출처 : http://pann.nate.com/talk/332447258